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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You and Me

​서울 마장초 조희진

  1. 2020, 너와 나의 첫 만남

  2020년 3학년 영어교과 수업을 맡게 되었고, 그 때 알게 된 아이가 K였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개학은 차일피일 미뤄져만 가다 급기야 사상 초유의 「온라인개학」을 통해 학교 문을 열게 되었다. 개학이라고는 했지만 콘텐츠 제공형으로 진행된 수업이라 아이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알지 못한 채 5월이 되었다. 겨우 시작하게 된 대면수업은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도 주1회가 최선이었고 그마저도 확진자 발생 상황에 따라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기가 일쑤였다. 국어와 수학의 기초학습능력도 부족했고 사교육은 전혀 받지 않고 3학년 영어 교과 수업시간에 영어를 접하는 것이 전부였던 K는 몇 번의 영어 대면수업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네 번의 수행평가는 모두 최하의 점수를 기록했다.

  2. 2021, 너와 나의 새로운 시작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 장기화로 아이들의 학력이 크게 저하되었으리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게다가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올해부터 국어, 수학에 영어까지 필수적으로 진단평가를 실시하게 되어 보충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의 수가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학교에서도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협력강사, 학습부진 전담강사, 두리샘까지 활용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일 년이라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게다가 기초학습능력 자체가 부족한 K는 4학년이 되어 국어, 수학, 영어 세 과목 모두 기준 점수를 넘기지 못해 전 영역에 걸쳐 보충지도를 받아야했다.

  그러던 중 관할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샘토링’이라는 사업을 알게 되었고 영어 교과 지도 경력은 늘어가지만 영어 기초학습능력이 부족한 친구들을 지도해본 경험은 없는 나에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고민 끝에 샘토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토요일이나 자율휴업일 같은 과외 시간 진행이 원칙이라 막상 대상자를 모집하려니 희망하는 친구들이 없어 이대로 수업을 접어야하나 생각하던 중 K가 수업참여를 원한다는 의사를 뒤늦게 전해왔다. 너무나 내성적이고 자기 표현이 드문 아이, 게다가 국어 학습능력이 떨어져 전과목 학습부진으로 고군분투 중인 아이 K와 나. 둘만의 총 20회 수업이 그렇게 4월부터 시작되었다.

  3. 천천히, 함께 걷기

  K와의 첫 수업은 긴장되었다. 아이에게 한 걸음 다가가면서 영어의 즐거움도 알려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자료가 아이의 마음에 가 닿을지 몰라 집에서 주섬주섬 좋아할만한 교구들을 챙겨 나섰다.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대일의 상황이라 그랬는지 K는 어렵지 않게 말문을 열었다. 8가베와 9가베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며 아이는 즐거워했고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간단한 진단평가도 해보았는데 K는 알파벳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 수업의 첫 번째 목표는 알파벳 익히기가 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익히기는 버거울 것 같아 예닐곱 개 정도의 알파벳을 순차적으로 복습하며 익혀가기로 했다. 영어 노트 선에 맞춰 알파벳을 쓰는 법을 모르고 왼손잡이에 연필 잡는 방법도 완전히 잘못되어 있던 K는 알파벳 따라쓰기도 힘들어할 때가 있어 아이의 손에 내 손을 얹어 함께 연필을 잡고 알파벳을 한 획 한 획 써보기도 했다. 토요일 오전 일찍 일어나서 진행하는 수업이 힘들 법도 했지만 게임, 퀴즈로 익혀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꾸준히 공부를 해나갔다. 학부모와의 의사소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매 시간 수업 내용을 정리해서 사진, 동영상과 함께 어머니와 소통해나갔다. 아이의 수업 진행상황을 꼼꼼히 전달했고 수업 일정도 조율해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을 수업일지로 누가 기록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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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학부모와의 수업 내용 및 결과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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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학습지도 일지 

  그 덕분이었는지 처음 2회기까지는 과제 해결이 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는 과제 해결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복습도 함께 이루어져 알파벳 익히는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시작할 때는 1학기 10회 수업을 통해 알파벳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5회 수업 만에 26개의 알파벳 대, 소문자를 모두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영어 읽기를 위한 Phonics 학습을 준비하고 있다.

  11살 K의 나이와 습득력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만질 수 있는 교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교구는 Go Fish 게임이었는데 기본 게임 방법뿐만 아니라 Memory game, Matching game, Bingo game등으로 다양한 응용이 가능했고 K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교구였다. 아이가 집에 가져가서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깜찍한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진 Alphabet Domino도 재미와 학습,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교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K를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아낌없는 칭찬과 그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일대일 수업을 통해 시간이나 진도에 쫓기지 않고 온전히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학습을 진행해갈 수 있었기에 아이의 작은 발전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배움의 즐거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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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Go Fish 게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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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구체물 조작 활동 

   4. 우리 모두의 성장

  작년 한 해, 아이들의 웃음이 없는 학교는 참 쓸쓸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지만 그래도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통해, 대면수업을 통해, 샘토링을 통해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해나갈 수 있어 다행이다.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을 안고 시작했던 우리 둘만의 수업은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고려하여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진행해온 덕분인지 80분이라는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매 수업이 유익했고 흥미로웠다.

수업을 통해 알파벳을 조금씩 익혀가는 K의 모습도 기특했지만 그보다 더 감동적이었던건 정규 영어 수업시간에 자신감과 활기를 찾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게임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던 아이는 토요일 수업이 회를 거듭해가면서 정규 수업시간에도 조금씩 적극적으로 참여해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교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도 매 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고민하며 준비한 수업의 과정에서 아이가 즐거움과 배움, 자신감까지 함께 키워가는 것을 지켜보며 ‘교사’로서의 순수한 기쁨과 보람을 한껏 느껴가고 있다. 내가 아이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K가 나를 이끌고 성장시켜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함께 걷기는 우리 모두를 자라게 했고, 그 자람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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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도미노 알파벳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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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K의 놀라운 성장

* ​서울 마장초등학교에 재직중이신 조희진 선생님께서는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심리를 전공하고 계시며, 5년 이상의

 영어 교과 전담경력을 바탕으로 부진학생 지도, 개별화 지도를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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